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싸이보그를 지켜라


지난 주말 박찬욱 감독의 신작이 개봉되었다. <복수는 나의 것>,<올드 보이>,<친절한 금자씨> 등 이른바 ‘복수 3부작’을 통해 세계적인 감독으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한 박찬욱 감독이 한류 톱스타 정지훈(비)을 캐스팅하여 내놓은 작품은 제목마저 ‘무지’ 찬란한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이다. 뭐가 괜찮은가.

박찬욱식 라이스메가트론 취식법

정신병원. ‘영군’(임수정)이 새로 들어온다. 영군은 자신이 싸이보그인 줄 안다. 형광등과 자판기와도 말을 나눌 수 있다. 그런 증세는 이런 곳에서는 있을 법한 이야기. 그러나 문제는 자신이 싸이보그이기 때문에 밥을 먹을 수 없고 충전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녀를 지켜보는 일순(정지훈). 일순은 타인의 능력을 흡수할 수 있는 특이공능을 지녔다. 일순은 영군에게 새로운 해결책을 내놓으려고 무지 애쓴다. 

정신병원이라는 지극히 비정상적인 공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판타지일 수 밖에 없다. 그 동안 보아왔던 수많은 영화 속 정신병자들은 자기가 어떤 특정 사물이라고 인식하고 그것 때문에 타인과의 소통에 극심한 부조화를 이룬다. 여기서도 싸이보그이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 박찬욱 감독의 상상력, 혹은 설정은 독특하다. 하지만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와 비교하여 뭔가 더 센 것을 기대한 것은 그동안 박 감독이 엄청난 수위를 자랑하는 파격적 독창성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뜻밖에도 ‘12세 관람가’ 눈높이에 맞춘 창의력과 표현력의 제한속도를 지킨다. 그게 아쉬울 뿐.


영화는 정신병원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펼쳐지는 한없이 순수한 사람들의 천진한 상상력을 소심하게 구현해낸다. <복수 삼부작>에서 보여준 기가 질릴 정도로 대범했던 박찬욱 감독은 정신병원에서는 도식적 정신분열 증세를 풍성한 상상력으로 재구성한다. 정신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의 개개인의 역정이 정확히 밝혀질 순 없지만 친절한 박 감독은 환자들의 거듭되는 행동과 동어반복을 통해 전(全)사회적 모순을 단순화시킨다. 두 주인공 정지훈과 임수정도 다른 등장인물을 통해 정체가 드러난다. 언제나 '탈=마스크=가면'을 써고 등장하는 정지훈은 ‘자신이 너무 잘 생겨서’ 피해를 보았고, 자신이 원해서 정신병원에 들어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지훈의 엉덩이(항문? 괄약근?)에 이야기의 초점이 맞춰지면 ‘비욘드 12’에 해당하는 또 다른 박찬욱식 영화읽기도 가능해진다. 이들 등장인물의 불명확성과 모호함 때문에 그들의 비범함과 초능력이 더욱 빛을 발하게 된다. 꾸역꾸역 밀어 넣는 순대의 이미지와 불편하지만 없어서는 안 되는 ‘틀니’라는 사물을 통해 할머니는 임수정에게 “존재의 목적”이라는 묵직한 철학적 화두를 던진다. 관객은 우선 독순법을 통해 어렵게 그 ‘목적’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박찬욱 감독은 <트웰브 몽키스>의 브래드 피트와 <오복성>의 오요한을 한군데 비벼놓았고, ‘비’의 깨끗함과 ‘임수정’의 포스에 의해 ‘0’군과 ‘1’순의 청순 드라마로 만드는데 성공한다. 이 영화의 흐릿한 라스트 씬 역시 박찬욱식 농담이다. 인간과 싸이보그의 결합은 ‘12등급’에서는 도저히 분해할 수도, 결합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몽상적 유토피아이다. 

사족. 박찬욱 감독이 왜 정신병원을 택했을까. 오대수를 사설감옥에 감금했듯이, 복수극이든, 아동용 판타지이든, 박 감독은 상상가능한 설정 속에서 모호한 관계를 그려내는데 익숙해진 모양이다. 아마도 다음 작품은 군대 속에서 이루어지는 불가해한 관계와 속박, 그리고, 속죄일 듯하다. 아니면 은하울타라 제국에서의 브로크백 마운틴이든지. (박재환  2006/12/11)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라이프 오브 파이] 무대 위의 호랑이, 구명보트에 올라타다 (Live on Stage)

'음식남녀', '와호장룡', '브로크백 마운틴' 등으로 유명한 대만 출신의 세계적인 거장 이안 감독의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2012)는 캐나다 작가 얀 마텔의 소설이 원작이다. 인도에서 동물원을 경영하던 가족이 경영난에 힘들어하다가 결국 캐나다로 이민을 떠나기로 하고 일본화물선에 오른다. 그 배는 폭풍우를 만나 침몰하고, 열일곱 살 주인공 소년 ‘파이’만이 가까스로 구명보트에 오른다. 그런데 화물선에 실렸던 '동물'들도 잇달아 구명보트에 올라탄다. 얼룩말, 하이에나, 오랑우탄, 그리고 벵골호랑이까지. 소년은 227일 동안 태평양 망망대해를 떠도는 작은 보트에서 사나운 호랑이와 동거를 하게 된다. 그것은 '소년이 전하는' 이야기다. 과연 그 배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얀 마텔의 믿을 수 없는 이야기는 이안 감독의 환상적 영화로 오래 기억된다. 그리고 이 이야기가 무대극으로 만들어졌다. '라이프 오브 파이'는 일련의 워크샵을 거쳐 2019년 영국에서 초연 되었고, 브로드웨이를 거쳐 마침내 서울 'GS아트센터'에서 막을 올렸다. 이 작품은 노래와 춤이 어우러진 ‘뮤지컬’이 아니라 배우와 퍼펫(동물인형)이 함께 뒹구는 특별한 ‘연극’(PLAY)이다.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인도 동남부 폰디첼리의 ‘피신 몰리토르 파텔’은 친구들에게 ‘파이’(Pi)라 불리는 소년이다. 아버지가 운영하던 동물원은 경영난에 시달리고 정치적 혼란이 잇따르자 동물원을 처분하고 가족이 모두 이민을 가게 된다. 몇몇 처분하지 못한 동물들도 함께. 하지만 곧 폭풍우를 만나고 소년과 동물이 겨우 구명보트에 오르게 되는 것이다. ‘리처드 파커’라는 근사한 이름을 가진 벵골호랑이도.   이야기는 227일 동안 태평양을 떠돌다 구조되어 병원에 실려 온 ‘파이’에게 선박회사 조사관이 화물선의 침몰 상황에 대해 캐묻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17살 ‘파이’가 어떻게 그렇게 오랜 시간을 물도, 음...

[인생은 아름다워] 살아남은 자의 기억법, 그리고 삶의 의미 ( Roberto Benigni *Life Is Beautiful* 1997)

 1999년 3월에 열렸던 제7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오래 기억될 장면이 하나 연출되었다. 이탈리아의 레전드 배우 소피아 로렌이 최우수외국어영화상 수상작으로 <인생은 아름다워>를 발표하자 로베르토 베니니는 기쁨에 들떠 벌떡 일어나 앞사람의 의자등받이에 우뚝 올라선다. 베니니는 남우주연상까지 두 개의 오스카를 손에 쥔다. 그 요란하고, 정신없는 시상식을 기억하는 사람에게는 이 영화도 혼란스럽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인류 최고의 비극이랄 수 있는 홀로코스트를 이렇게 동심의 눈으로, 판타지한 이야기로, 우스꽝스럽게 묘사해도 되는 것인지. 실제 홀로코스트를 너무 가볍게 접근한 것 아니냐는 반응도 많다. 그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가 지난 주 극장에서 다시 공개되었다. 26년 만에 다시 보는 ‘인생은 아름다워’는 여전히 아름다운가, 혹은 여전히 지켜보기가 고통스러울까.  1939년, ‘파시스트’ 이탈리아는 사회적 분위기가 흉흉했다. 젊은 유대인 귀도가 아레초의 삼촌 레스토랑에서 일하기 위해 도착한다. 익살스럽고, 모든 것이 긍정적인 그는 첫날부터 온갖 소동을 일으킨다. 그리고 처음 만난 도라를 ‘공주님’이라 부르며 반해 버린다. 거만한 공무원과 결혼을 앞뒀던 도라는 결국 귀도와 결혼하고, 어린 아들 조수아를 낳는다. 그렇게 행복한 가족을 꾸렸지만 나치가 점령하고 유대인들은 모두 기차에 실려 강제수용소로 끌려간다. 귀도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직은 어린 조수아에게 이 모든 비극이 한 편의 연극이고, 장난이고, 게임이라고 속이는 것이다. 감옥 같아 보이지만, 모두들 중노동하고 있지만, 그러다가 사람들이 하나둘 사라지지만 이 모든 것이 게임이라고. 1000점을 얻으면 상품을 얻을 것이라고 일러준다. 장난감 탱크가 아니라 진짜 탱크를 상품으로 줄 것이라고.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조수아는 그렇게 수용소에서 숨죽이고 숨어서 견뎌낸다. 패전이 가까워지자 독일군은 모든 수용자를 처형하려고 한다. 귀도는 마지막 명연기를 펼쳐야한다. ...

[한란] 소녀가 온다 - 제주 4.3의 비극 (Hallan,하명미 감독,2025)

1945년 8월 15일, 해방과 광복을 맞은 한반도는 진정한 통일을 맞지 못한다. 남과 북이 갈라지고 제주도가 혼란에 휩싸인다. ‘데모크라시’와 ‘이데올로기’의 깊은 뜻을 모른 채 희생의 탑을 쌓기 시작하는 것이다. 1948년의 격전장은 제주도였다. 1999년 12월 16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에 따르면 ‘제주4·3사건’이란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그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을 말한다고 되어있다. 과연 그해 그 섬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하명미 감독은 그 때의 비극을 극화한다. 영화 <한란>은 어느 날 갑자기 이데올로기 싸움터에 내몰린 제주도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영화가 시작되면 바람 많은 제주 해안마을의 돌담집이 보이고 축사의 돼지를 바라보고 있는 여섯 살 소녀 해성을 보여준다. 아버지는 산으로 올라가서 소식이 끊겼다. 엄마 아진은 어린 딸을 할머니 손에 맡기고 마을 사람과 함께 산으로 향한다. 엄마가 산으로 떠나고 얼마 뒤 군인들이 들이닥치고 마을 사람들은 ‘빨갱이’로 몰려 총살당한다. 노인네고 어린애고 모두. 그런데 어린 해성이 새벽이슬에 깨어난다. 살아남은 것이다. 이제 어린 아이는 아빠가 숨었다는, 엄마가 올라간 그 산길을 따라 무작정 발걸음을 옮긴다. 제주도의 산과 오름에 숨어든 ‘빨갱이 세력’과 빨갱이로 몰려 죽는 게 두려운 마을 사람들, 그리고 그 사이의 엄마와 어린 딸의 운명이 엇갈리기 시작한다. 곳곳에서는 군인이 양민을 학살하고 있다. 아진은 어린 딸 해성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제주 4.3사건은 문학계와 대중문화에서 조심스레, 꾸준히, 치열하게 다뤄졌다. 현기영의 ‘순이 삼촌’. 김석범의 ‘화산도’, 오멸 감독의 영화 ‘지슬’ 등. 여기 그 추념의 목록에 <한란>이 추가된 것이다. ‘제주 4.3’을 이야기하자면 아직도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