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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징사진관] 역사교육, 사진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Dead To Rights, 南京照相舘, 신오 감독,2025)


중국 장쑤(江蘇)성 성도인 난징(南京)은 중국의 역사도시이다. 기원전에는 ‘오월동주’나 ‘와신상담’이라는 사자성어를 남겼고, 주원장이 명(明)을 세운 곳이며, 청나라가 서구열강으로 수모를 당하더니 아편전쟁의 결과 치욕적 조약을 맺은 곳이다. 태평천국의 홍수전이 반란의 깃발을 휘두른 곳이며, 장개석의 국민정부가 끝까지 수호하려한 정치적 수도이다. 이곳은 중일전쟁 당시 최악의 학살이 벌어진 곳이다. 바로 '남경대학살'의 현장이다. 1937년 중일전쟁  일본군이 당시 ‘중화민국’의 수도인 이곳을 점령하고, 난징과 그 주변으로 피신한 중국군 패잔병을 수색한다는 명목으로 약 6주간 중국인을 대규모로 학살한 사건이다. 바로 그 때의 이야기가 최근 중국에서 만들어졌다. <난징사진관>이다. 그 때의 흐릿한 흑백사진들이 커다란 스크린으로 인화된다.

 1937년 12월 13일. 일본 6사단 군인들이 마침내 난징의 성벽을 뚫고 시내로 진입한다. 일본군은 이때부터 인류사상 가장 잔혹한 대학살극을 펼치기 시작한다. 우편배달부 류창은 시내를 빠져나갈 기회를 놓치고 만다. 집배원 유니폼을 입은 그는 일본군의 사살 대상이 된다. 허겁지겁 도망 다니다가 일본군 사이에 뛰어든다. 즉결처분 받기 직전, 그의 가방에서 쏟아진 우편물 중 사진관으로 배달되는 문건이 있었다. 일본군 사진병 이토 히데오는 그를 사진관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오해하고는 그에게 사진인화 작업을 맡기게 된다. 류창은 자신이 시내 ‘길상사진관’의 수습일꾼이라고 속이고는 사지에서 생을 도모하게 된다. 그 사진관 지하 비밀공간에는 사진관의 가족이 숨어있다. 이제 류창은 속성으로 사진인화 기술을 배우고 사진병이 건네주는 필름들을 인화하기 시작한다. 암실에서 필름을 현상액에 담가  정지액을 넣고, 정착시킨 후 인화지에 현상시킨다. 그리고 드러나는 끔찍한 모습들. 살인, 광기, 학살의 순간들이다. 사진관 지하에 숨어있는 민간인, 살기 위해 일본군 밑에서 통역을 하고 부역하는 사람들, 그리고 몰래 숨어든 패잔병까지. 류창은 일단 살아남아야 한다. 이 사진을 지켜야 한다. 이 학살의 증거를 세계만방에 알려야 한다! 


 난징대학살 기간에 희생된 중국인은 30만 명에 달한다. 살인, 방화, 강간 등등. 추악한 전쟁에서 사악한 군인들이 할 수 있는 최악의 광경이 펼쳐지는 것이다. 강보에 싸인 아이가 운다고 땅에 집어던져 죽이는 장면도 있다. 물론 일본은 오랫동안 이 사실을 숨기거나, 축소하거나, 외면하거나, 강변했다. 아이리시 창이 쓴 책 <난징대학살>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난징대학살과 관련하여 가장 유명한 사진이 하나 있다. ‘100인 참수경쟁’이라는 것이다. 난징 점령 뒤 일본 신문에 실린 기사이다. 무카이 도시아키(向井敏明) 소위와 노다  쓰요시(野田毅) 소위가 일본도를 중국인의 목을 베는 경쟁을 펼쳤다는 것이다. 당시 종군기자로 난징에 입성한 일본기자들이 앞 다투어 보도한 것이다. 

당시 일본 언론보도 (위키피디아)당시 일본 언론보도 (위키피디아)

- “무카이 소위와 노다 소위가 어느 쪽이 빨리 적병을 베는지 경쟁하고 있다. 우시(無錫)에서 65:25” (도쿄일일신문)

 - “노다 소위가 100인 목 베기를 자랑하는 편지가 도착했다. 난징 입성하기 전까지 105명을 참했고, 지금까지 253명을 참했다. ‘백인 베기의 노래’가 만들어졌다.” (오사카매일신문)

- “무카이 소위가 노다 소위와의 500명 베기 약속을 위해 분투 중, 지금까지 305명을 베었다"(도코일일신문)

 이 상상을 초월하는 일본군의 만행은 영화 <난징사진관>에 삽화처럼 끼어있다. 이토 사진병이 난징 시내를 돌며 ‘일본군의 군사적 위업’을 사진에 담을 때 거리에서 마주치는 광경이다. 거리엔 잘린 중국인의 머리가 굴러다니고 있고 두 군인이 포즈를 취한다. 자막에는 명확하게 ‘무카이 소위’와 ‘노다 소위’로 나온다.


영화 <난징사진관>은 전쟁 중, 난징 점령 당시의 난징 시민의 지옥 같은 상황이 끝없이 펼쳐진다. 물론 중국의 패잔병들의 참혹한 처형 모습도 담겨있다. 일본어를 할 줄 아는 민간인들이 살기 위해 통역하는 모습, 전쟁이 끝나면 ‘한간’, ‘부역자’로 손가락질 받을 것에 대해 고뇌하는 모습 등 인간적인 모습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그리고, 잔혹한 일본에 대해, 침략자 일본에 대해 초개같이 목숨을 바치는 영웅적인 모습도 만나게 된다. 

중국 난징에 가면 난징대학살희생자기념관(侵華日軍南京大屠殺遇難同胞紀念館)이 있다. 이곳에는 자갈이 깔려있다. 기념관이 처음 세워질 때부터 놓여있다. 30만 개의 자갈로 그 때 희생당한 중국인의 영혼이라는 설명을 들었을 때 중국인은 어떤 감정이 들지 상상이 간다. 이 영화 개봉 당시 중국 관객들이 보인 일본에 대한 분노, 적개심은 충분히 이해가 될 정도이다. 이 영화는 결코 프로파간다가 아니다. 중국공산당식 홍보영화도 아니다. ”과거를 잊으면, 미래가 없다“는 역사를 가르쳐주는 영화이다. 그것은 중국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1919년 4월 15일, 제암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찾아보시라.

참고로 영화에 등장하는 ‘길상사진관’ 류수창의 이야기는 모티브가 된 인물이 있다. 1937년 난징의 화동사진관(華東照相館)에서 일하던 14살 뤄진(羅瑾)이었다. 그는 일본군이 맡긴 필름 롤을 인화하며 끔찍한 사진들을 몰래 따로 보관했던 것이다. 그리고 사진관을 수색할 때마다 목숨 걸고 지킨다. 그렇게 지킨 16장의 사진이 전후 군사재판에서 강력한 증거로 사용된다. (리뷰.박재환.2025)

▶난징사진관 (원제:南京照相舘/ Dead To Rights) ▶감독: 션아오(申奧) ▶출연: 류하오란(劉昊然),왕쮸안쥔(王傳君/통역 왕광하이),가오예(高葉/린위슈), 왕샤오(王驍/사진관 주인), 저우요(周遊/피신 경관), 하라시마 다이치(原島大地/이토 히데오) ▶개봉:2025년11월5일/15세이상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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